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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인도네시아 자고라위 고속도로(비와 싸운 4년 9개월)

등록일 : 2015/03/16

이 공사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비’와 싸우는 일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대체로 비가 많이 오는 나라로, 1년에 평균 200일 정도는 비가 내리며 연평균 4,000㎜ 정도의 강우량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이 공사의 중심지역인 보고르는 현지어로 ‘Kota Hujan(City of Rain)’, 즉 ‘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에서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연강우량 5,000~6,000㎜가 우기인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약 7개월 동안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뿐만 아니라 비가 올 때는 폭포수처럼 퍼붓고, 세계에서 그 빈도가 가장 잦다는 번개와 벼락을 동반하여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따라서 1년 중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건기인 5~9월의 다섯 달에 불과한데, 특히 1978년에는 이상 기후로 뚜렷한 건기·우기의 구분 없이 1년 내내 비가 내려 공사 진척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토공을 해 놓으면 비가 퍼부어 도로가 패어져 달아나기 일쑤였고, 도로가 패어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젖은 상태로는 도로 공사를 해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비가 올 때는 1~1.5㎞ 정도의 구간에 천막을 쳐 토목공사를 해 놓은 곳이 떠내려가거나 침수되는 것을 막기로 하였다. 즉 햇볕이 나면 마른 흙으로 성토와 다짐을 하고,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재빨리 천막을 덮어 침수를 방지하는 것이다. 성토재료도 가장 가까운 곳에 미리 운반, 쌓아 놓았다가 비가 오면 천막을 덮어 놓고 햇볕이 나면 집중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폭 10m, 길이 20m의 천막을 1~1.5㎞ 구간에 덮기 위해서는 양쪽으로 250장씩 500여 장이 들었다. 또 아침에 천막을 벗기는데 2시간, 구름이 몰려오면 이것을 덮는데 2시간씩이나 걸렸다. 따라서 실제로 작업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기왕에 작업해 놓은 곳이 망가지지 않고, 비 오는 날에도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이 공사에서 천막투입에 소요된 비용만도 50만 달러가 넘었다. 아침저녁으로 덮었다 벗겼다 하니까 4개월만 지나면 천막에 구멍이 나고 비가 새서 새 것으로 바꿔줘야 했기 때문에 3년 동안 무려 4,000장의 천막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현대건설 직원과 기능공들의 사기도 엉망이었다. 하루에도 2~3명씩 찾아와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자고라위 공사는 적자 현장이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성적도 올릴 수 없고 진급에도 지장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아 인원보충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쉽게 돌려보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직원과 기능공들에 대한 통솔 및 적응을 위한 자체교육을 실시하는 등 현장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공기가 많이 지연되었는데 1977년 우기에 접어들면서 발주처 측에서는 B공구 28㎞를 예정보다도 빠른 1978년 3월까지 개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까지도 표층 약 10만 톤, 기층 6만 톤의 공사량이 남아 있었으므로 천막을 씌워가며 비가 올 때도 공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야간작업까지 계속했다. 이같이 애쓴 끝에 1978년 3월 9일에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B공구 개통식을 가질 수 있었다. B공구는 마쳤으나 1978년 12월 준공예정인 A공구가 문제였다. B공구 개통에 쫓겨 A공구의 장비가 B공구로 많이 이동된 관계로 A공구는 더욱 공사가 지연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A공구 공사를 진행시키기 위해 본사와의 연락 하에 장비와 인원계획을 재정비하는 한편 인도네시아 도로국에 공기연장을 요구, 6개월 연장을 받았으나 이 중 3개월은 우기여서 결국 일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다. 공사가 종반으로 접어든 1978년 11월까지도 토공이 26만㎥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흙으로 토공을 계속한다면 도저히 공기 내에 끝마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추가 투입된 크러셔로 직경 3인치 정도의 골재를 생산하여 흙 대신 성토재료로 쓰는 것이었다. 감독의 승인을 받고 이 방법을 실천에 옮겨보니 강우에 구애받지 않고 단기간 내에 많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렇게 기술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로 보완을 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일하면서 겪은 고난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공사 참여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어쨌든 이 같은 고생 끝에 1979년 6월 30일에는 드디어 4년 9개월에 걸친 공사를 모두 끝내고 인도네시아 최초의 고속도로 개통식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