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델리 지하철 현장은 단순히 해외 현장의 하나라고 치부하기에는 특이한 점이 많은 현장이었다. 공사금액만도 4억 달러가 넘는 규모이니 단일 지하철 건설 프로젝트로는 가히 세계에서 제일 큰 프로젝트라 할 수 있었다. 전체 노선이 6.6km에 지하철 역사가 7개, 역사 건설에 투입되는 콘크리트 물량이 36만㎥, 철근량은 5만 톤에 달했다.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Integrated JV라는 방식에 의해 공사가 수행됐다는 점이다. 처음 우리가 인도 델리 지하철 현장을 접했을 때, 말 그대로의 뜻으로 ‘정글’이라 불렀다. 그곳은 매일매일 혹독한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졌고, 그 안에서 적잖은 사상자가 속출하는 처절한 투쟁의 장소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착공 후 3년이 지났을 무렵 델리 지하철 현장은 발주처로부터 지하철 개통을 10개월 앞당겨 달라는 특별한 요청을 받았다. 일반적인 건설현장에서 공기단축이라는 것은 그리 특별한 요구이거나 목표일 수 없겠지만 인도에서, 그것도 지하철 현장에서 공기 단축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인도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미션이었다.

 

혹독한 지질조건으로 인해 반 년 이상 공기가 지연된 상황이었다. 지연된 공기를 만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던 때에 발주처로부터 10개월 지하철 개통일 단축이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추가적인 TBM 장비투입과 NATM으로 공법변경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연된 공기를 따라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다시 공기단축 요구를 받아들고 보니 단지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할 뿐, 아무도 선뜻 새롭게 주어진 요구에 대해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발주처가 나서서 요청하는 공기단축을 마다할 수는 없었기에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 들였고 현장 조직을 다시 한 번 개편해 비상돌관체제로 전환하고 공기단축에 매진했다. 설계와 자재구매 및 외주, 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요구됐다. 마감공종과 기계, 설비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대리석 등 각종 석재를 갈아내는 분진으로 지하철 역사 안은 뿌연 먼지가 자욱했으며 각종 기계와 전선 설치작업이 밤낮없이 진행됐다.

 

마감작업을 하면서 가장 가슴 졸였던 것들 중 하나는 천정 마감재와 방화벽이었다. 천정 마감재 자재 생산은 중국에서 이루어졌는데 주문된 대로 생산이 잘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삼성의 네트워크가 동원되면서 파트너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현장에 설치돼야 할 방화문은 모두 1000개가 넘었는데 내화 테스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제대로 된 내화 테스트가 인도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보니 인도에서 생산된 방화문들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에서는 미국 쪽에서 방화문을 수입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패한 결과를 토대로 방화문의 설계를 변경해 내화테스트가 성공될 때까지 수차례에 걸쳐 테스트를 반복했다. 개통일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진퇴양난에 빠졌던 현장에 마침내 내화테스트가 성공했다는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간들이었고 수백만 달러의 원가와 수개월의 공기가 단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루 말로 다하지 못할 어려움을 딛고서 마침내 우리는 인도 5000년 역사상 최초로 공기 단축의 위업을 달성해 내고 말았다. 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 준공되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하는 것이 인도지하철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생존의 조건으로 요구됐고 삼성직원들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동안 인도 델리 지하철 프로젝트에서 체득한 글로벌 경쟁력과 일하는 방식은 우리 회사의 해외사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 놓을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