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16
한국이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공사이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태국에 도착했으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현대건설이 처음 태국에 가지고 갔던 장비는 재래식 도로공사에서 사용하던 구식의 노후장비였다. 그나마도 절대다수가 부족했다. 불도저·로더 등 일부 장비는 신제품을 구입하였는데, 기능공들이 사용방법을 몰라 석 달도 채 못가 고장이 나버리고 말았다. 당시 국내에서는 불도저라고 해도 삽날을 케이블로 매달아 움직이게 하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기능공들은 새로 도입된 유압식 장비의 사용방법을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장이 나면 부품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비슷한 것을 찾아 대충 끼워, 나중에 수리한 곳에 다시 고장이 나면 다른 곳까지도 문제가 생겨 더욱 곤란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국제규격의 시방서대로 공사해본 경험이 없어 도로공사의 기본인 층 다짐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공사 전까지 현대건설은 표층에 사용될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를 생산해본 경험이 없어, 아스콘 기능공들을 데려왔다. 그러나 태국은 비가 많은 나라여서 모래와 자갈이 항상 너무 젖어 있어, 그대로 섞을 경우 함수량이 맞지 않아 아스콘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2~3개월간 고심한 후에야 알아내어 건조기에 자갈을 넣고 말리려고 했으나, 건조기 자체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정주영 사장이 와서 보더니 ‘건조기에 비싼 기름 때 가면서 말릴 게 뭐 있느냐, 골재를 직접 철판에 놓고 구워라’하고 지시했다. 과연 건조기를 이용할 때보다 생산능률이 2~3 배까지 높아졌다. 또한 모래와 자갈에 모두 천막을 덮었다가 써서 80% 이상의 아스콘 가동률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정주영 사장은 한 달이면 일주일은 태국에 와서 살다시피 했다. 기후 등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공사가 부진했기 때문에 그가 오면 으레 현장 직원들은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또한 토취장에서부터 현장까지의 작업 로에는 운반하던 돌들이 몇 개씩은 떨어져 있기 마련인데, 그는 차를 타고 가다가 혹시 그런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손수 돌들을 한쪽으로 치우곤 하는 통에 현장 직원들이 쩔쩔맸다. 또 정주영 사장은 새벽 4시에 현장에 나와서 바이브레이터를 돌렸을 정도로 의욕이 강했다. 장사들도 바이브레이터를 돌리고 나면 몸이 덜덜 떨릴 정도이니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이처럼 정주영 사장이 솔선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기술자들이 많은 자극을 받았다.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는 현대건설이 국제적으로 발전하고 진출하는 결정적계기가 된 공사였다. 비록 수지면에서는 상당한 적자를 보았지만, 세계 속의 현대로 성장할 수있는 튼튼한 기초를 닦았다. 또한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시공경험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