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02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내무성 본청 공사를 1984년 12월 1억 9,335만 달러에 수주해 1990년 11월에 완공했다. 공사기간만 약 6년, 3만 2,000평의 부지에 지상 8층, 지하 3층의 연면적 23만㎡ 규모의 철골조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2,200대의 모니터 카메라와 18대의 엘리베이터, 8,000회선의 통신시설과 60년대 당인리발전소 규모(2만 5,000㎾)의 비상 발전설비를 갖추었다. 투입된 철골만 2만3,000톤으로, 특히 피라미드를 거꾸로 한 본체위에 이슬람 사원의 지붕을 연상시키는 돔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그러나 외관이 수려한 만큼 완공까지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내무성은 도면 변경을 수차례 요구했고, 1988년 6월의 네 번째 도면 변경은 각 방의 위치를 대폭 변경시켜 새로운 도면이 완성되기까지 8개월을 외부작업만 실시해야 했다. 2차에 걸쳐 현장에 부임해 내무성 본청 건물의 완공을 마친 엄필현 상무보는 당시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되살린다.
“당시 나는 사우디 내무성 조감도를 봤을 때 엔지니어로서 반해 버렸습니다. 최첨단 시설도 그렇지만, 시공하는 사람으로서 한번 해봐야 할 오피스 건물이라는 필(Feel)이 꽂혔단 말이지요. 이게 역피라미드 구조였거든요. 보기에 모양은 좋을지 모르지만 언밸런스하니까 엔지니어로서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초기 선발대와 함께 사우디 내무성 현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상공에서 바라본 사우디의 첫인상은 예상을 크게 빗나갔다고 한다.
“사우디라 해서 사막의 황량함이나 살벌함을 연상하고 있었는데 도착하니까 리야드 공항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내부에 들어서니 천연 대리석의 웅장한 시설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공항을 빠져나와 한밤중에 보니까 시가지가 검은 융단에 야광주를 박아 놓은 것 같아서 그야말로 도시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지요.”
사우디 내무성 건물은 혈기 넘치는 젊은 엔지니어에게 끊임없이 모험과 도전의 욕구를 자극해 주었다. “당시 막 과장으로 진급해 현장을 누비면서 진짜 소신껏 내가 해보고 싶은 신공법이라든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방법들을 현장에 직접 적용해 볼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구경할 수도 없는 50톤 타워크레인을 과감하게 트래블링 타입(Travelling Type)으로 끌고 다니면서 작업을 했지요. 그게 마스트 폭만 10m였어요. 그리고 역경사가 진 외벽 마감을 위해 엄청난 양의 가설 비계가 필요했었는데 대안으로 7층 높이의 가설 비계틀을 만들어 레일 위에 올려놓고 밀고 다녔어요. 감독이 저게 뭐냐고 묻기에 우주선을 발사대로 이동시킬 때 쓰는 롤링 플랫폼(Rolling Platform)이라고 했어요.”
내무성 공사의 하이라이트는 맨 위층의 철골 캔틸레버 트러스(Cantilever Truss)를 완공 후의 하중에 의한 처짐을 미리 계산해 설치하는 일이었다. 시공 당시 얼마의 높이를 들어 올려야 준공 후 설비와 사람이 입주하고 나서 구조적으로 안정된 수평을 유지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일이 난제였다.
“사실 수평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일교차에 따라 예민한 사람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트러스가 요동치니까. 원설계자가 요구하는 300㎜ 캠버(Camber)를 맞추기 위해 현장에서 시간마다 변화를 체크해서 커브를 그렸지요.”
당시 엄필현 과장에게는 ‘건축물은 살아 있다’는 선배들의 얘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햇빛을 받으면 늘어났다가 기온이 떨어지면 다시 수축하는 건축물을 현장에서 접하면서 시멘트·철근 등의 무기 재료가 엔지니어의 땀과 노력이 들어가면 유기체가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우쳤던 것이다.
현장은 그 규모를 떠나 언제나 싸움터다. 그 싸움터에서 단련된 사람들이 현대맨이다. 위기가 와도 마음에 동요가 없고, 회사의 회생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엄필현 상무보는 지금도 현장에서 건축물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대로 일해 본 사람은 자기 내부의 열정과 애정을 쏟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사가(社歌)에 나오는 일하는 기쁨, 일하는 보람의 참 의미를 알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