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02
슈아이바 항만 공사에서 처음으로 부딪쳤던 어려움은 중동에서의 모든 공사가 그러하듯이 골재 확보의 문제였다. 이 공사에 필요한 골재는 48만㎥, 블록기초 및 호안용 석재가 20만㎥나 되었는데 마땅한 석산을 찾을 수가 없었다. 쿠웨이트업자들이 골재를 팔고 있기는 했으나 너무 비쌌다. 그래서 힘들더라도 직접 석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1977년 6월,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골재 채취팀을 편성, 지도를 들고 쿠웨이트업자들의 골재채취장 근처를 조사하였다. 쿠웨이트의 기존업자들은 옛날의 강 유역에서 5~6m의 표토를 제거하고 골재를 채취하고 있었다.
옛날에 강이었던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모래가 5m, 두꺼운 곳은 8m 이상 덮여 있으니 백호로 그만한 두께의 모래를 파헤쳐 보아야 했으며 골재가 있을 만한 곳은 벌써 쿠웨이트업자에게 허가가 주어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2개월 동안 사막을 헤맨 끝에 마침내 골재원을 찾아냈다. 현장에서 150㎞나 떨어진, 이라크 국경에 위치한 곳으로 골재채취율도 10~20%에 불과했으나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덤프트럭으로 현장까지 실어 날랐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지나자 쿠웨이트 정부로부터 골재채취허가 취소통지가 날아왔다. 근처에 있던 쿠웨이트업자들의 농간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되면 현대건설이 자기네 골재를 사서 쓸 줄 알았지만 그들의 비싼 골재를 쓰니 차라리 주베일 산업항 3호 석산의 돌을 들여다 쓰기로 했다. 3호 석산에서 현장까지의 거리는 300㎞, 게다가 국경을 넘어야하는 까다로움이 있었으나 그래도 그 방법을 고수했다. 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석재의 물량이 늘어나자 UAE의 라스 알 카미스라는 곳에서 석재를 싼 값에 구입해다 썼다. 이곳에서 현장까지의 석재운반은 주베일 산업항 자켓운반용으로 사용한 2만 5,000톤급 바지선과 1만 마력의 예인선을 이용했다. 이렇게 해서 석재는 공사를 마칠 때까지 별 문제없이 조달할 수 있었다.
시멘트 공급 문제 역시 골재채취의 경우와 같이 현지 업자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처음에는 현장에 클링커 밀을 설치, 시멘트를 자체 생산하려 했으나 현지 업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쿠웨이트 정부의 제재 때문에 설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처음 진출한 나라인 만큼 이러한 어려움이 컸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시멘트는 아스리(ASRY) 조선소공사 때 현대건설이 바레인에 세워놓은 시멘트공장의 것을 들여다 썼다.
이 공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블록을 쌓는 일이었다. 경사식 안벽을 시공해야 했는데, 이것은 처음 하는 방법이라 초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쌓고 허물고, 다시 쌓았다가 허물고……계획상 하루 80개를 쌓아야 했으나 80개는커녕 20개를 쌓기도 힘들었습니다. 경험 부족을 가슴 아파하며 대책을 강구하느라 한 달을 넘게 불면(不眠)의 밤을 보내야 했지요.” 초기에 현장소장을 맡았던 백삼택 부장은 당시의 고충을 이렇게 쓰고 말하였다.
이러한 고민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오히려 공기를 단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스크리딩 바지(Screeding Barge)라는 기구의 제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잭업 바지(Jack-up Barge)에 특수 스크리딩 장치를 부착하고 상부에서 윈치로 조정하게 되어있어 사람이 수중에 들어가지 않고도 바닥정리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고안된 것이다.
이 기구가 슈아이바 현장에서 큰 효과를 보게 되자 이 공사가 끝난 후에도 중동의 각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계속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