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02
쿠웨이트 하수처리장 공사의 핵심적인 부분은 전기기계와 설비기계 설치이다. 전기기계 및 자재는 영국의 GEC사에, 설비기계는 역시 영국회사인 사이몬 하틀리(Simon Heartly)사에 각각 맡겼다. 이들을 모두 영국회사에 맡긴 것은 다른 유럽지역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회사는 모두 자체의 부품공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납품받아 조립과정만 담당하는 회사들이었다. GEC사의 경우 36개의 군소부품 생산업체를 계열화시키고 있었는데 이들 중 한 공장에서라도 부적격 부품을 생산할 경우 기자재 제작 공정 전체가 지연된다. 설계 변경으로 기계의 규격이 바뀌게 되어 해당 부품생산업체에 연락을 해야 할 경우에도 GEC사를 통해야 하므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또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조업 중단사태가 자주 일어났다. 36개나 되는 계열업체 중 언제든지 한두 공장씩은 사고가 생기게 마련이었고 그때마다 기자재 제작이 지연되었다. 설비기계를 맡은 사이몬 하틀리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현장의 공사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자재가 도착되지 않으니 다음 일을 진행시킬 수 없었고, 생산을 독촉하느라 전화통과 텔렉스만 불이 날 정도로 바빴다. 기자재가 도착되지 않아 중단된 공정대신 미리 진행시킬 수 있는 공정부터 일을 진행시킴으로써 유휴시간은 가급적 줄일 수 있었다. 가능한 공정부터 차근차근히 공사를 진행시켜 두었기 때문에 기자재가 들어온 후의 공사 진행은 매우 빨랐다. 전기 기자재가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이 1980년 7월 말이었는데 전체공정이 1981년 3월에 끝났으니 기자재 설치 후 8개월 만에 모든 공사를 마친 셈이다. 이와 같이 기자재의 도착이 늦어지는데도 공사를 빨리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자재 설치를 기다리지 않고 미리 진행시킨 공정들이 우수하게 시공되어 기자재를 설치한 후에 따로 보수·개축공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더위, 파리, 악취, 그리고 영국인과 레바논인 감독들과의 싸움이 악몽 같았습니다.” 이 공사에 대해 남아있는 것은 악몽 같은 기억이라고 당시 정우익 현장소장은 술회하였다. 본부가 있는 코스탈 지역의 평균 기온은 섭씨 45℃였다. 가히 살인적인 더위라 할만 했으나 자하라 지역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자하라 및 알디아 지역은 평균기온이 코스탈 지역보다 5~7℃정도 높아, 한여름에는 섭씨 50℃를 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온몸이 불덩이가 된 듯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알디아에서는 파리와 악취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존의 하수처리장이 그곳에 있었는데 현대건설의 시공팀이 도착했을 때 마침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 쿠웨이트 유일의 하수처리장으로 각지에서 모인 오물과 공장폐수를 모두 이곳에서 처리하였다. 모여든 폐수는 미처 처리되기 전에 뜨거운 태양열에 의해 부패, 악취가 굉장했다.
이러니 어느 곳에나 파리가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오물이 썩을 때 생긴 메탄가스가 심해 몸이 약한 근로자들은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따라서 알디아에서는 자하라나 코스탈 지역에 비해 3배가 넘는 근로자들이 메탄가스의 피해로 인해 진정제를 상용하다시피 해야 했다. 게다가 이라크 국경으로 향하는 길목이라 차량통행이 많았고 그에 따라 교통사고도 잦았다. 악취와 파리, 그리고 더위로 짜증이 나 안전사고의 위험도 그만큼 컸던 것이다. 어쨌든 이 지역에서 3년이나 지내면서 근로자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돌지 않았던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 공사를 위해 지급된 살충제의 3분의 2 이상을 알디아 지역에 투입하고 모두가 각별히 조심한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