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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적도의 열기보다 뜨거웠던 도전의지의 승리, 필자 오흥섭氏

등록일 : 2015/04/27

EGP3 프로젝트(Escravos Gas Plant Phase-3 Onshore Project)는 아프리카 최대의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델타주에 위치한 에스크라보스 지역의 육해상 광구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인근의 액화가스공장과 화력발전소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제하는 가스처리공장을 짓는 공사였다. 현대중공업은 세계적 오일메이저인 쉐브론(Chevron)과 나이지리아 국영석유회사의 합작사인 발주처(CNL)로부터 이 가스생산설비 공사를 수주 받아 성공적으로 완료, 납품(Lump Sum Turn Key)하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나이지리아 내 화력발전소의 연료 부족으로 전력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여 EGP3 프로젝트 건설 공사로 연료가스를 공급해 원활하게 전력 생산을 하기를 크게 기대해 왔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부응해 공기 내에 공사를 완료하여 발전연료를 공급하는 가스생산설비를 갖춤으로써 LPG를 미국, 유럽 등지에 수출하게 되었다. 이 가스생산설비의 성공적인 완공으로 발주처인 CNL은 나이지리아정부의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현대중공업의 저력과 프로젝트 수행능력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EGP3 프로젝트에서 현대중공업이 달성한 무재해 2200만 인시는 발주처 및 쉐브론이 전 세계에 발주한 여타의 프로젝트와 비교해 지금껏 유일무이한 대기록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EGP3 현장 인근에서는 미국의 KBR이 CNL에서 발주 받은 GTL(Gas To Liquefaction) 공사를 자국 및 유럽 기술자를 동원해 수행했는데, EGP3 공사와 거의 동시에 시작해 2012년 5월 현재 시운전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다.

 

 

[늪지대를 낀 현장 특성상 육로를 통한 물류 조달이 여의치 않아 바지선을 이용 해 수로로 운반했다.]

 

 

열악한 조건 하에서 돌관공사 감행

 

현대중공업이 아프리카 오지에 진출하기까지에는 2000년대 초부터 델타주에 진출해 몇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여러 가지 걸림돌을 헤쳐 온 경험이 바탕이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EGP3 공사를 수주해 성공리에 프로젝트를 완성하여 발주처에 납품할 수 있었다. EGP3 프로젝트는 초기에 기본설계부터 상세설계까지 당사의 설계 기술진들이 완료한데다, 설계를 담당했던 기술자들이 현장에 투입되어 감리 업무까지 수행함으로써 공사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특히 오지의 현장에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작업자들의 데모나 폭동에 대비해 무장군인과 경찰에 의뢰하여 현장의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다보니 현장 주변을 철저히 관리하려는 무장군인, 경비요원들과 작업자 간에 잦은 마찰이 발생해 작업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때때로 작업자들이 경비군의 과잉방어로 현장 투입을 거부하는 데모를 수시로 일으켜 현장작업이 중단 위기에 놓인 적도 있었다. 이러한 마찰로 작업이 중단될 때마다 현장소장은 물론 모든 관리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작업자 전원을 면담하고 설득해 슬기롭게 작업을 재개하곤 했다.

 

또한 간혹 현장 주변 수로를 따라 사는 일부 원주민들이 각종 보상 등을 터무니없이 요구하며 현장을 향해 몇 번의 총격을 가해와 숨죽이며 몸을 숨길 때도 있었다. 이럴 경우 운전 중인 가스플랜트의 파이프에라도 총격이 가해지면 폭발 등으로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발주처와 협의해 한 달에 한 번씩 외부 공격에 대비한 대피훈련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민방공훈련을 외국에 나가서도 지속적으로 했던 것이다. 다행히 공사 완료 시까지 공장 내에서의 총격 사고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공사 현장은 대서양을 접한 강 하구의 내륙에 위치했으나 온통 늪지대를 끼고 있어서 육로를 통한 물류 조달이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대서양을 끼고 흐르는 수로를 통해 물류를 수송했다. 물류의 전진기지는 현장에서 강 상류에 있는 와리(Warri)에 자리해 있었다. 판매업체나 생산업체에서 구매한 모든 기자재와 장비는 우선 와리에 야적장을 마련해 적치하고 계획에 따라 현장으로 바지(Barge)선을 이용해 수로로 운반하였다.

 

공사 초기에는 수로 주변의 부족들과 사전 조율 없이 하우스보트(House Boat, 선상의 주거용 배)를 이용해 와리에서 현장으로 자재 등을 운반했는데, 주민들의 저지로 다시 회항한 적도 있었다. 이후 주변 부족들과 수로 통행료를 협의해 일주일에 두 번만 수로의 왕래를 허용 받았는데, 아무리 급한 자재와 장비가 있더라도 이 원칙을 꼭 지켜야 했다.

 

 

[폭염을 피해 밤시간에 철야 돌관작업을 실시했다.]

 

그러니 모든 물자 공급에는 철저한 계획이 뒤따라야 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현지 작업자를 포함한 인력의 수송은 소형 항공기를 이용했는데 마치 전쟁터에서 물자 수송을 하는 듯 한 분위기였다. 소량의 기자재도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 날랐다. 그밖에 현장에서 반출되는 여타 잉여재와 반출 장비는 수로를 통해 와리까지 수송하였다. 이에 따라 공사 일정에 따른 철저한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한편 적도 부근에 위치한 나이지리아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로 나눠지는데, 건기는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이며 그 외의 기간은 우기라 볼 수 있다. 건기에는 36~40도의 기온과 강한 햇볕으로 작업효율성이 떨어져 쿨러(Cooler)를 동원해 시원한 물을 수시로 제공하고 중동과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을 30분 연장하여 식후 낮잠을 즐기도록 했다. 우기에는 비 온 후 작업 재개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여느 현장과 마찬가지로 구조물에 곧바로 오를 수 없게 하는 등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했다. 그러다보니 물기가 마른 후에 작업 재개가 가능하여 공정 진행을 계속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에 따라 우기에는 보통 밤에 비가 덜 내리거나 아예 내리지 않는 점을 이용해 화기 작업을 제외한 일부 공종은 기온이 높지 않은 저녁시간에 집중적으로 시행했으며 철야 돌관 작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원주민 협상 과정의 난항

 

계약서에 따르면 현장의 숙식캠프는 발주처가 제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약서에 명시된 적기에 캠프를 제공하지 못하게 되자, 현대중공업은 별도의 계약변경으로 캠프를 자체 해결하였다. 현장 공간이 부족하다보니 육상 숙소 캠프를 짓는 건 엄두를 낼 수가 없어 수상 숙소인 하우스보트를 동원하는 차선책을 실행키로 결정하고 화급히 현지 하우스보트 숙소를 수배해 운용하였다. 하우스보트 숙소는 좁은 방에 여러 명이 기거하는데다 물 위에 떠 있어서 늘 흔들리는 바람에 그 같은 환경에 익숙지 않은 작업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또 소형 하우스보트를 동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천여 명의 수용시설을 갖춘 선상숙소(FLOTEL)를 추가로 동원하였다. 방 하나에 2~6명을 수용하는 이곳 역시 숙소에서의 취사 금지, 흡연 금지와 함께 여러 명이 좁은 화장실을 사용하는데다 새벽 출근시간에는 세면실과 화장실을 함께 써야 하는 구조여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발주처가 공사 중간에라도 육상 캠프를 제공하기로 했지만 공사 완료 시까지도 캠프 제공을 이행하지 않아 어려운 여건의 선상 숙소 생활이 계속되었다.

 

또한 발주처와의 계약상 작업자 대부분을 현지 인력으로 쓰고 현지 자재를 운용한다는 강제조항(Local Content)을 따라야 했다. 특히 현지인력 운용 문제는 현지 원주민들과의 첨예한 갈등을 야기했다. 현대중공업은 현장 주변의 원주민을 고용(작업자 대부분이 Local Labor)하도록 하는 Local Content 조항에 따라 인원 모집을 했다. 공사 초기에는 숙련공이 없어서 교육을 통해 기술을 습득시킨 후 공사에 투입했다. 사무보조원 역시 현지인을 채용했는데 나이지리아가 영어권 문화이기에 보조원으로 근무시키는 데 무리가 없었다. 또한 Local Content 조건을 바탕으로 현장 주변의 원주민 대표(부족장 또는 부족장이 지정하는 원주민)와 계약자간 협의를 통해 고용하는 내용이 부수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현장 주변의 부족 숫자가 워낙 많고 각각의 부족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고용 협의에 일보도 진전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 서로 자기네 부족의 원주민을 많이 고용하라며 압박을 가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최소의 대표 부족을 선정해 협상 테이블에 앉도록 종용 및 설득하여 작업자 고용비율을 부족간 적정 안배토록 하였다. 이들 부족간에도 서로 앞선 대표성을 점유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원주민 숫자가 많은 한 개 부족이 대표권을 갖고 협의에 임하였다. 물론 협의 테이블에는 대표 부족만이 아닌 여러 부족 대표가 참여하였고, 매 사안마다 여기저기서 자기들의 의사를 주장하여 마치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격년으로 진행된 노사협의에서는 매번 고율의 임금 인상을 요청하여 이 또한 프로젝트 진행에 걸림돌이 되었다. 원주민 작업자들은 임금 인상 등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데모나 태업 등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현장사무실에 난입해 소란스럽게 구호를 외치며 근무를 방해하였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사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적정선에서 인상하기로 합의를 했다. 적정선의 인상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상식으로 너무 높은 인상률이었으나 그나마 공사의 진행을 위해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무리한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끈질긴 노력으로 합법성을 찾아 힘겹게 해결한 것이 아직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또한 현지인 작업자를 고용할 때마다 각 부족간의 숫자 안배, 공종 및 직종간의 안배 등이 여간 골치 아프지 않았다. 3차원 방정식을 푼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사상 난제를 경험과 지혜로 해결

 

본 공사는 계약상 기존 공장(Phase I & II)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신규 공장(Phase III) 건설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특히 기존 공장의 경우 정상 운전중에 업그레이드 공사를 시행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공사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다. 고압가스가 지나는 파이프나 운전중인 기기 주변에서의 용접 등 화기 작업에는 이중삼중의 안전시설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어려움이 수반되었기에 발주처에서도 작업의 허가사항을 준수하는지 시시각각 체크하고 관리하여 작업 진도가 늘 계획보다 늦어지기 마련이었다. 계약 초기에 공사계획서를 작성할 때는 일반적인 공사현장의 안전관리사항 조건을 적용해 계획했으나 발주처인 CNL은 다른 현장보다 훨씬 엄격한 관리를 계약자에게 요구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연간 유지보수기간(Annual Maintenance Period)을 최대한 활용해 공기를 만회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통상 가스플랜트에서는 연간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공장 가동을 중지한 후 닦고 조이고 기름 치기 위한 보수를 한다. 이 방법으로 운전 중인 기존 공장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화기 작업을 아무런 사고 없이 마치고 신규 공장과의 연결 공사(Tie-in 작업, 일명 Shutdown 작업)도 성공적으로 완료하였다.

 

 

[울산 본사와 현지 임시 야드에서 모듈을 제작, 설치해 공기를 단축했다.]

 

Tie-in 작업을 성공리에 끝내자 발주처에서도 현대중공업의 공사 수행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아울러 앞에서 언급했듯 현장 공간이 여의치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공장을 부분별로 제작하여 현장으로 운반한 후 Hook-up하는 전략을 취했다. 현대중공업의 최대 장점인 모듈화 작업으로 현장의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일부의 모듈(Module)은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의 야드에서 제작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거쳐 현장으로 직접 운반해 설치 및 시운전을 하였다. 그 외 몇몇 모듈은 나이지리아 현지의 임시 야드에서 제작한 후 운반, 설치, 시운전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발주처로부터 공기 단축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감사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칭찬 작전 성공과 현장인원 전원 철수 완료

 

한편 기후가 더워서인지 나이지리아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행동이 무척 느린 편이다. 여유가 있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만만디’로 일관했다. 또 수행 공사가 많지 않은 나라이다 보니 공사 완료가 곧 실직으로 이어진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는데, 매니지먼트(Management)의 지속적인 인간관계 유지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공사를 끝낼 수 있었다. 참고로 인당 국민소득이 1000불이 안 되는 이 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 여유를 부리는 걸까?

 

우리는 느릿한 현지인들을 다독거려 경쟁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 않는다던가. 현장소장과 매니지먼트는 매일 오전 20~30분의 티타임을 가지며 현지 근로자들의 작업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방법을 며칠에 걸쳐 논의한 끝에 주별로 한 번씩 열리는 안전회의에서 지난주 우수 근무자에게 시상을 하기로 했다. 효과는 있었다. 상을 받은 작업자는 물론 다른 작업자들도 열심히 하여 수상하겠다는 의식이 고취되어 생산성과 안전의식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월례회에서도 표창장과 상품을 수여해 우월감을 갖도록 하고 경쟁의식을 고취시켜 작업능률을 제고해갔다. 이를 통해 현장에 동원된 여러 부족에서 온 작업자들이 특유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응집력을 유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칭찬 작전으로 현지인들을 독려하여 작업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공사의 완성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6월 시운전을 위한 2차 Leak Test가 안전사고 없이 완료됨에 따라 각 시스템마다 시운전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보조기기들의 잦은 고장, 수리작업의 장애, 기존 가스플랜트(Phase I & II) 운전과 연계한 설비 테스트 일정의 조정 작업이 이어졌다. 발주처와의 유기적인 협력 하에 마무리를 지으며 2010년 12월 2일 ‘최종 시운전(Final Turnover Notice Certificate)’을 접수해 시운전을 완료하였다.

 

보통 플랜트 시운전 시에는 각 기기를 공급한 벤더의 기술적 협조를 구하기 위해 벤더의 기술자들을 초빙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몇몇 벤더들은 나이지리아, 특히 오지인 이곳 Escravos 현장으로 출장 근무하는 것을 거부하고 통신 등으로만 해결하려는 지극히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해당 벤더에게 현장 안전의 중요성과 발주처가 오일메이저로 모든 기기 공급 벤더의 영원한 고객이라는 점을 들어 꾸준히 설득하였다. 또한 발주처와 협조해 무리 없이 모든 필요 벤더의 기술자를 동원해 시운전을 마쳤다.

 

공사 완료 몇 개월 전부터는 하루 24시간 3교대로 야간 돌관 작업까지 가동했다. 드디어 공사가 완료되어 현장인원 전원의 철수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현지 작업자 중 일부가 철수와 함께 실직한다는 불안 심리를 내비치며 현장에 나가지 않으려고 해 발주처와 약속한 일정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과 개별 면담을 갖고 인근 공사현장에 소개해 주기도 하고, 차기 프로젝트가 이어지면 연속 고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설득 작업을 이어갔다. 발주처와 약속일자까지 전 인원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은 참으로 피를 말리는 듯한 고통을 수반했다. 본사 경영진들도 수없이 현장을 방문해 공사 수행 방안 개선, 발주처 면담, 현장직원 격려를 하는 등 모두가 어려운 여건에서 밤잠을 설치며 온힘을 다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마침내 일정에 맞추어 철수를 완료하고 발주처로부터 공사완료확인서(Final Certificate)를 받을 수 있었다. 각 공종별로 잔여업무 완료 계획, 현장인원 철수 계획, 장비·자재 철수 계획을 세워 매일 추진 현황과 결과를 시간대별로 점검해 목표 일정대로 현장작업을 완료하고 현장인원 전원 철수와 장비·자재 철수를 함으로써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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