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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걸프전쟁의 사선을 넘다

등록일 : 2015/03/02

1990년 12월, 이라크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1984년 11월 아브그라이브 고속도로공사를 재개한 후 약 72개월 만에 준공을 앞두고 있는데 그대로 철수할 수는 없었다. 당시 서방세계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 및 무역금지 조치 등으로 이라크 국민은 물론 그곳에 거주하던 외국인의 생활여건도 극도로 악화됐고 심지어 통신도 두절된 상태였다. 그러한 와중에도 우리는 준공을 위한 막바지 마감작업을 추진해 마침내 1990년 12월 준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1년 1월 초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미국 전투기들이 바그다드 도심지의 주요 거점을 폭격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우리 일행은 바그다드 대탈출 작전에 돌입했다. 한국인 16명과 태국인 25명, 모두 41명의 직원과 근로자로 구성된 우리 일행은 하루아침에 공사현장의 일꾼에서 전쟁터의 전사가 되어 바그다드 탈출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했다.

 

우리의 탈출은 긴박하게 진행됐다. 1991년 1월 14일 오전 8시 대한항공 전세기가 대기하고 있는 1000km가 넘는 거리의 암만(요르단의 수도)을 향해 출발, 12시 30분경 이라크 사마라 검문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출국허가서 문제로 검문소 통과를 거부당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주이라크 대사관의 도움으로 출국허가서 문제를 해결하고 밤 11시에 전쟁이 임박한 바그다드를 뒤로 한 채 재출발을 했고, 1월 15일 오전 8시에 요르단 국경에 도착했다. 출국을 돕기 위해 본사에서 전쟁터로 파견된 김진환 부장을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함께 암만에 도착했으나, 대한항공 특별전세기는 이미 한국으로 출발한 뒤였다.

 

추가로 예약했던 요르단 및 이집트 항공편들은 임박한 전쟁을 이유로 운항을 취소하는 등 항공기를 이용해 암만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2시 30분 경에 호텔의 요란한 동요 속에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폭격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는 생각에 너나할 것 없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가족들의 모습에 괴로워했다. 다국적군의 바그다드 폭격 시작과 동시에 암만공항은 폐쇄되었으며, 생화학탄의 위험이 잠재된 요르단에서 전쟁의 직접적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 우회하는 길을 찾아 나섰다.

 

1월 17일 일찍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고는 자동차 편으로 오후 3시 30분에 요르단의 아카바 항구에 도착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누에바(이집트 시나이)행 여객선에 마지막 탈출의 희망을 걸고 수천 명의 아프리카 전쟁 난민들과 함께 항구의 바다 바람 속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일행은 전쟁의 공포, 긴장, 초조, 허기, 추운 바다 바람 등등 전쟁터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고통들 속에서도 하나가 되어 서로 의지하고 위로했고, 또한 따스한 가족의 품을 그리며 마지막 탈출의 희망을 이어갔다.

 

9시간을 기다려 1월 18일 새벽 1시에 아카바 항을 출발 홍해를 건너 누에바 항에 아침 8시에 도착했다. 마침내 전쟁터를 벗어났다는 안도감 속에 이집트에서 먹은 30시간만의 첫 아침식사(아랍 빵과 커피 등)는 영원히 잊지 못 할 꿀맛이었다. 황량한 사막과 메마른 시나이 반도를 지나고, 수에즈 운하를 밑으로 통과해 카이로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수속들을 지원해준 공관 직원들과 한인회 회원들의 동포애는 아직도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카이로에 1월 18일 저녁 시간에 도착해 한인회에서 준비한 한국인 식당에서의 김치를 곁들인 저녁식사, 그리고 카이로에서 첫 밤은 전쟁터를 탈출한 안도감 속에 지친 피로를 맑게 가시게 했다.

 

마침내 1991년 1월 19일 런던행 영국항공 BA-154편으로 이집트를 떠나 1월 20일의 런던에서 서울행 BA-027편으로 1월 21일에 귀국했다. 본사 전 임직원들의 성원과 기원 덕분에 바그다드 탈출 8일 만에 무사히 꿈에도 그리던 조국과 가족의 따스한 품에 안겼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사진 속의 아들과 딸은 성장하여 이제 훌륭한 사회인이 되어 자립하려고 하고, 집사람은 아직도 예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