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02
바그다드 의료단지 공사는 이라크가 제3차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2005년까지 바그다드 시내에 대규모 의료단지 건설을 하는 사업이었는데, 현대건설은 그 2단계 공사를 1980년에 수주하였다. 1982년 4월까지 공사를 마치기로 했으나, 당시는 이라크가 전쟁 중이었던 관계로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1984년 1월에야 완공을 보았다. 공사가 한창 진행될 때 전쟁이 발발하여 유일한 이라크 수송 항구인 바라스항이 폐쇄되었다. 따라서 자재 공급 방법을 해상에서 육로 수송으로 바꾸어 쿠웨이트를 경유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자재는 유럽의 프랑크푸르트나 런던에서 오는 것도 있었는데, 그것이 트럭에 실려 오면서 많은 손실이 발생하여 작업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바그다드 의료단지 공사가 한창 막바지에 이를 무렵인 1983년, 당시 정수현 차장은 미국 뉴저지 지점에서 4년여 간 근무하다 본사로 복귀하였다. 그래서 모처럼 가족들과 서울 생활을 시작하려던 어느 날, 갑자기 이라크의 바그다드 의료시설 현장(MECY)으로 출장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이라크는 한창 전쟁 중이었으므로 불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현장 근무 명령이 아니라 일시적인 출장 명령이었으므로 다소 가벼운 기분으로 출국하였다. “마침 잘 왔다.” 당시 바그다드 의료시설 건설 현장소장 조창희 이사가 아주 반색을 하며 정수현 차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곧바로 영국 QS 책임자를 소개받았는데, 그의 첫마디가 이랬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수현 차장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1개월 내에 귀국하기는 글렀고, 앞으로 언제까지 업무를 마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적중하였다. 현장 공무 기록을 점검해보니 적어도 5~6개월은 걸려야 정리가 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거의 준공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워낙 까다로운 감독관의 현장 검측 때문에 공사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이라크는 당시 전쟁 중이라 남자들이 전장에 나가는 바람에 공사 현장에는 주로 여자들이 감독관으로 파견되어 있었다. 바그다드공대 건축과 출신의 젊은 여자 감독관은 미혼이었는데, 검수 과정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몰랐다.
정수현 차장이 여자 감독관 때문에 한창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다. “전쟁 중이므로 이라크에는 생필품이 모자랍니다. 여자 감독관이니까 여성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선물해 보세요.”
영국 감독관 부인의 조언에 정수현 차장은 무릎을 탁 쳤다. 그 후 업무나 휴가차 한국 본사와 이라크 현장을 수시로 오가는 직원들을 통하여 여성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긴급 공수하였다. 손수건, 테이블보, 기초 화장품, 스타킹, 속옷, 심지어는 생리대까지 공수하였다.
이러한 선물 작전은 맞아떨어졌다. 처음에는 선물을 잘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비교적 가격이 싼 생필품이므로 뇌물의 성격과는 달랐다. 따라서 차츰 거부 반응을 보이던 여자 감독관의 마음이 누그러져 나중에는 선물을 건넬 때마다 아주 고마워하였다. 그리고 그 후부터 깐깐하던 태도가 달라져 우호적으로 나왔다. 그 덕분에 까다롭던 현장 검측이 수월하게 진행되어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