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3/02
말레이시아 본토와 ‘동양의 진주’라고 불리는 관광도시 페낭 섬을 연결하는 페낭대교는 총연장 14.5㎞이며, 그중 해상구간만 8.5㎞에 이르는 대교다. 1985년 완공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는 최대였고, 세계적으로도 세 번째로 긴 다리였다.
이처럼 대형 공사였으므로 입찰경쟁 당시부터 이미 건설 부문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때 입찰에 참여한 회사만 해도 현대건설을 비롯하여 호주 1개사, 프랑스 5개사, 독일 3개사, 일본 13개사 등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각축전을 벌였다. 당시 가격 면에서만 따질 경우 입찰 참여회사 중 프랑스의 캄프농 베르나사가 최저입찰로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그 회사보다 공기가 1년 빠른 3년으로 잡아 수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가격을 내리지 않는 대신에 공기를 앞당겨, 1년의 통행료를 받게 될 경우 더 이익이 된다고 말레이시아 정부를 설득시킨 점이 주효했던 것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님의 지론이 ‘사람을 만나는 일에 손해를 보면 안 된다’면서 늘 우리에게 인사해서 돈 드느냐?’고 하셨지요. 말레이시아 총리 내외가 울산 현대자동차를 방문했을 때 정주영 회장님께서 직접 주스를 서빙했지요. 그랬더니 총리 내외가 깜짝 놀라는 거였어요. 그날 정주영 회장님은 마하티르 총리에게 포니 한 대를 선물했는데, 말레이시아에 가서 총리가 그 차를 그렇게 애용했다는 겁니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기념관에 가면 그 포니가 전시되어 있어요. 이처럼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나 정부 관료들은 현대건설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이었어요. 페낭대교를 수주할 수 있었던 것은 공기를 3년으로 계획한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지만, 현대건설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작용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당시 말레이시아 현대건설 지사에 근무한 김영환 지사장의 회고담이다. 페낭대교 건설 현장은 당시로서는 현대건설의 역대 토목공사 중 최고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현대건설 토목 기술자들은 서로가 페낭대교 현장에 가고 싶어 줄을 섰을 정도였다. 물론 바다 위에 다리를 놓는 것이라 고생도 많이 하는 현장에 속했지만, 워낙 대규모의 공사였으므로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정주영 회장도 페낭대교 건설현장을 방문하면 런치보트를 타고 둘러보면서“ 나 회장 그만두고 여기서 소장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페낭대교 현장에서는 당시 모두들 휴일도 퇴근 시간도 없이 근무하였다. 일요일인데도 현장소장이 나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흙에 들어가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것을 본 말레이시아 기자들은 다음날 신문에 ‘한국 사람들은 Around the Clock’이라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가장 난공사였던 것은 직경 1m, 길이 60m의 당시 세게 최대 콘크리트 파일을 3,000개 이상 박는 작업이었다.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서 20톤급 증기 해머로 작업을 했는데, 컴퓨터로 원격조정을 해 무려 5,000회 이상 때려야만 파일 하나를 박을 수 있었다.
현대건설은 36개월 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드디어 1985년 8월 3일 페낭대교의 역사적인 개통식을 가졌다. 페낭대교는 1986년 미국 컨설팅 엔지니어링협회에서 주관한 제16차 연례 엔지니어링 우수상 시상식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