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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남다른 감회와 감격의 전율, 필자 이명박氏

등록일 : 2015/03/13

무릇 빛나는 전통과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 속에 잉태되고, 그곳엔 응당 굳세게 살아 앞서 나가는 의지의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쥬베일 산업항」공사,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 기념비적 대형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던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남다른 감회와 감격의 전율에 휩싸이곤 한다.

 

단순히 그때의 공사가 성공적이었다거나, 당시로서 세계 최대의 공사였다는 이유, 혹은 쥬베일 산업항 공사의 시공이 우리가 세계적 건설회사로 발돋움하게 되는 결정적 이벤트였다는 일차적 사실들만이 나를 그렇게 감동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일단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 엄청난 공사의 성공적 마무리를 보고 사우디 당국은 말할 나위없고, 세계의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거니와 나를 지금까지 한없이 감회에 젖게 하고, 그 감격에 전율케 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서 있던 우리의「현대인」이다.

 

우리는 그때 그곳에 다만 서 있었다. 모두가 주저앉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된 영겁의 허적, 그 열사의 한 가운데에 다만 우리 「현대인」들은 투혼의 상징처럼 꿋꿋이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의 얼굴들을 잊을 수 없다. 오직 「일을 위하여」「일과 함께」「일을 통하여」끝없이 갈증 속을 걸어가던 모습들을 잊을 수 없다.

 

「쥬베일 산업항」공사의 추억을 사실적으로 기록해 보는 이러한 글과 서두에서, 굳이 이렇게 「현대인」의 개척의지와 정신의 일단을 부연하는 뜻은 단순히 나의 자랑으로서가 아니다. 이는 그곳에서 불철주야 땀 흘려 일했던 내 모든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같은 투혼, 개척과 도전의 정신은 두고두고 우리의 체질 속에 살아 숨쉬며, 새로운 신화를 끊임없이 창출해 낼 것을 또한 크게 믿는 탓이다. 「쥬베일 산업항」공사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놀라 와했던 우리 현대건설의 모습은, 첫째 공사 수행의 무모함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무모했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들에겐 우리가 너무나 무모한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열악한 조건과 장비수준, 그리고 일천한 경험으로 전혀 경험이 없는 대형공사를 서둘러가는 모습이 그들에겐 꼭 무모한 청년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점에 대하여 체험적 소신을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새로운 역사의 기록은 무모함에 가까운 도전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역사는 아침을 열어주지 않는다」. 「현대인」은 그때 한결같이 무모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정확한 시공과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였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지적으로써 우리들은 함축적으로 시사하는 표현이기도한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해결 수단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고 또 찾아 나서게 된다는 뜻일 게다. 달리 말하면, 누구나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임했을 때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도 생기고 일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에 임하는 우리의 적극성과 저돌성은 이국인의 눈으로 보기엔 자칫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적극성과 일의 효율을 찾아 물불을 가리지 않던 순수 열정이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창출도 가능하게 하였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셋째는, 한국 사람들의 근면함에 세계인들이 크게 놀랐다. 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 현대건설인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그때 이미 적극적 의지, 개척의 정신, 강인한 추진력, 근면의 기풍, 이 모든 「현대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해 보여 주었다.

 

앞서 설명하였거니와 이러한 정신의 도도한 흐름은 우리의 일상 속에 생생히 살아 숨쉬며 무수한 신화를 창조해 나갈 것이다. 무수한 불가능을 무수한 가능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러한 저력, 이러한 근성은 「쥬베일 산업항」공사의 수주 단계에서부터 여지없이 발휘 되었다.

 

 

대형공사 발주 정보입수

 

「쥬베일 산업항」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유전지대인 쥬베일 지역의 산업시설을 위한 신항 건설공사로써, 사우디아라비아 항만청에서 발주하여 ‘76년 2월 16일에 입찰을 실시하였다.

 

당시의 국제 건설업계에서 20세기 최대의 役事라고 일컫던 이 공사는 공사금액만도 9억 4천만 달러, ‘76년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25%에 상당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 조차 힘들 정도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 10억 달러 규모의 항만공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은 입찰이 있기 불과 7개월 전, 그러니까 ‘75년 7월의 일이었다. 세계 굴지의 건설회사들은 이미 이 계획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손을 써왔고, 그때까지 선진국의 독무대나 다름없던 대형공사의 입찰자격을 얻는 것부터가 커다란 문제였다.

 

당시 사우디 미니컴의 요청으로 입찰참가업자 선정을 하고 있던 영국의 윌리엄 할크로우(William Halcrow)사에서는 미국, 영국, 네델란드, 독일 등의 9개 업체를 선정해 놓고 있었다. 시간적으로 매우 늦었다고 판단한 우리는 그러나, 기필코 수주하겠다는 부동의 방침을 세워두고 빈틈없는 작전에 착수했다.

 

우선은 할크로우사를 설득하여 응찰자격을 확보하는게 급선무였다.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과 수단을 동원하여 할크로우사를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할크로우사는 현대의 조선소 건설당시 컨설턴트였던 영국의 애플도어사와 버클레이 은행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결과, 현대의 시공능력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사우디정부에 현대에게 입찰자격을 줄 것을 제의했다.

 

 

열 번째 응찰자격 취득

 

우여곡절 끝에 사우디정부는 현대의 입찰자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자격을 얻은 열 번째의 응찰자가 되었다.

그러나 난관은 도처에 있었고 첩첩산중이었다. 입찰자격을 받아놓고도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입찰보증금을 어떻게 조달하는냐 하는 것이었다. 공사금액의 2%로 규정된 입찰보증금, 응찰가격을 10억 달러로만 잡아도 2,000만 달러라는 거액이 필요한 셈이었다. 당시 국내 사정으로는 은행의 그만한 능력도, 외국에 대한 보증제도도 없었기 때문에 국내의 자금조달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궁리 끝에 우리는,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로 거래를 하고 있던 바레인 국립은행에서는 현대의 요청에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아무 조건이나 담보 없이 입찰보증금은 물론 차후의 이행보증까지 해 줄 것을 수락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얼마 뒤 바레인 은행측에서 난색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보증이 불가능 하다는 전갈이었다.

 

바레인 국립은행의 자본금은 1,500만 달러이므로 그 액수보다 500만 달러나 초과하는 산업항공사의 입찰보증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자기네가 지원해 줄테니 사우디 국립상업은행(SNCB)에서 보증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사우디 국립상업은행측에서는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으나 바레인과의 특별한 외교관계를 고려하여, 바레인 은행이 사우디 국립상업은행에 1,000만 달러를 예치한다는 조건부로 보증을 서 주겠다고 제의했다. 이 제의에 바레인측은 선뜻 1,000만 달러를 사우디은행에 예치함으로써 드리어 ‘76년 2월 12일, 입찰을 나흘 앞두고 7,060만 사우디리얄(미화, 2,460만 달러)의 입찰보증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드디어 최저 입찰

 

드디어 기다리던 입찰은 사우디미니컴에서 ‘76년 2월 16일 실시되었다. 당시 쥬베일에서 매립공사를 하고 있던 네덜란드의 스티븐은 영국과 독일의 필립 홀스만 등 5개사와 컨소시엄을 구성, 응찰했는데 입찰가격은 15억 2,070만 달러였다.

현대는 공사내역 전부에 대해 9억 3,114만 달러를 제시, 최저 응찰하였을 뿐 아니라 입찰 보증서를 비롯하여 모든 서류가 완벽하게 갖추어졌다는 발주처의 발표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현대가 이 공사를 수주하리란 것이 확실해 졌는데도 문제는 석 달이 지나도록 낙찰통지서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현대가 해상공사의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과 구미업체들의 끈질긴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구실을 찾아가며 현대에 낙찰되는 것을 방해했으며, 사우디 발주처측도 OSTT(Open Sea Tanker Terminal)부분, 즉 해상유조선 정박시설에 관한 시공경험이 없는 현대의 능력을 문제 삼고 있었다.

 

그래서 본사는 해상공사 전문업체인 브라운 앤드 루트(Brown & Root)사와 기술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그러한 결점을 신속히 보완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또 발주처에서 이스라엘 보이코트 문제를 들고 나왔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미국의 포드와 제휴를 하고 있었는데 포드가 이스라엘 보이코트에 관계돼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현대는 포드와는 현대자동차 초기에 기술제휴를 한 것일 뿐 현대건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하여 발주처를 납득시키기도 하였다.

어떻든 우리는 모든 난관, 방해, 불신임에 대하여 악착같은 근성으로 달라붙어 적극적으로 해결해 가며, 오직 낙찰확정 통보를 받아내는 데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체결

 

응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묵묵히 수고한 견적 실무진들에게 숱한 애환과 에피소드가 많았다. 보안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팀장을 비롯한 실무진들이 리야드의 여행자 숙박소에서 입찰 전 1주일 동안 합숙하였다. 제록스 기계까지 구입하여 직접 서류를 복사, 편집하였으며, 팀장이 타이핑도 직접하였다.

 

보안 유지를 위하여 입찰이 실시될 때까지는 숙소에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도록 모든 식사를 식당에서 배달해 먹었다. 식기조차 밖으로 못 내가게 해서 1주일분의 식기를 그대로 실내에 쌓아두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이발 면도는 물론, 목욕까지 못하게 해 그 더위 속에서 방안의 악취는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 속마음인즉 복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징크스를 지키기 때문이었다. 바레인 공사때 그렇게 해서 수주하였다고 하여 이때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더욱 웃지 못 할 일은 서류가 다 완성된 뒤에는 이것을 방바닥에 펼쳐 놓고 중역부터 순서대로 전 직원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것이었다. 또 서류뭉치를 싸놓고는 1주일 동안 목욕도 안한 몸으로 그 위를 깔아뭉개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미신 같은 것이지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수주하고야 말겠다는 직원 모두의 합일된 정열이 쉽게 읽혀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현대인」들의 일에 대한 그 욕심과 그 성의와 그 적극성에 스스로 감동한다.

이 모든 애환과 우여곡절을 극복하며 기술 선진국들의 끈질긴 방해와 반대를 뚫고 우리는 낙찰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사상 최고액인 단일 수표로 7억 리얄의 선수금을 받던 날은 감동에 겨워 모두가 울먹였다. 그 수표 한 장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다. 미화 2억 달러의 선수금이 한국외환은행에 입금된 날이 한국경제발전의 획기적인 날이었다는 서울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우리는 한결같이 숙연해 지기도 하였다.

 

 

수많은 시행착오

 

쥬베일 산업항, 그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공사 량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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