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4/28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테러, 샘물교회 인질 사건, 여행금지국가 지정 등을 연상시킨다. 2001년 아프간을 침공한 미국에 의해 탈레반정권이 축출된 지도 1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프간은 여전히 탈레반을 비롯한 반군의 저항이 계속되어 곳곳에서 테러가 자행되고 있다. 미군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로 이루어진 국제안보지원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은 이에 맞서 여전히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중동에 진출한 삼환기업은 요르단, 예멘, 몽골,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알제리, 터키 등 많은 나라에서 활동하였다. 2003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해 개척과 도전정신으로 국가기간망 구축 등 대규모 전후 복구 건설공사를 수행해 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평화가 정착되지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치안이 불안해지고 있으며, 지정학적 특수성과 열악한 제반 조건 등으로 건설공사 수행에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가로놓여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삼환기업 직원들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며 대한민국 국가이미지 선양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쟁의 참화가 그칠 날 없었던 아프간
아프가니스탄은 북쪽으로는 아무다리야강(Amu Darya River)을 사이에 두고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동북쪽으로는 중국의 신장자치지구, 동쪽과 남쪽으로는 파키스탄, 서쪽으로는 이란과 국경을 접한 내륙국가다. 파미르고원에서 시작해 국토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만년설의 힌두쿠시산맥의 산악지형과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지대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높은 곳은 해발 7,485m에 달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인더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유럽, 중동, 페르시아, 인도의 문명들이 상호 작용하고 투쟁하던 독특한 연결점으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민족의 터전이 되어 왔던 곳이다.
아프가니스탄 영토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와 영국령 인도 간에 중앙아시아 일원에서 펼쳐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전쟁터로 휘말리게 되는데, 제정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영국은 인도를 보호할 목적으로 아프간을 자국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 아프간전쟁을 일으켰다. 아프간은 제1차(1839~1842년), 제2차(1878~1880년) 전쟁으로 1905년 영국의 보호국이 되었으나, 제3차 전쟁(1919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왕국이 외세를 몰아내며 완전한 독립을 쟁취했다. 이 때 영국(인도)은 인도와 아프간의 경계인 듀란드 라인(Durand Line)을 설정하는데, 그 후 인도로부터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면서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국경으로 고착화되는 바람에 파슈툰민족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으로 나뉘는 비극이 발생했다.
1979년에는 친소 사회주의정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소련군이 침공했으나,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원 하에 이슬람 전사(Mujahedin)들의 게릴라 항전(Zihad)이 이어져 10년 만에 소련군이 철수하게 되었다. 이후 군벌세력 간의 내전에 휩싸여 1992년 무자헤딘의 카불 점령으로 나지불라 공산주의정권이 몰락하면서 14년에 걸친 아프간전쟁이 끝이 난다. 전쟁과 내전의 와중에 200만 명의 사망자와 5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전 국토가 전쟁의 참화 속에 폐허가 되고 말았다.
1994년 남부 칸다하르에서 뮬라 오마르와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결성된 탈레반(Taliban)은 무장투쟁 2년 만에 항소전쟁의 영웅 마수드 장군이 이끄는 북부동맹을 몰아내고 수도 카불을 점령해 랍바니 대통령을 축출하고 집권한다.
2001년 미국은 9.11테러의 배후세력으로 테러집단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탈레반정부에 인도를 요청하나 거부당하자, 2001년 11월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정권을 몰락시킨다. 이후 파슈툰족 출신인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출범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며 카르자이정권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가 재건 및 복구사업 참여
기나긴 전쟁의 참화로 파괴된 국가기간도로망을 복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국가기간도로망과 인접 국가와의 연결 도로를 복구 및 재건하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국제연합,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및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아 인프라 스트락처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가기간망은 인접 6개 국가와 연결되는 International Link Road, 아프간 전 국토를 순환 일주하는 Ring Road, 남북을 종단으로 연결하는 남북수송로(North-South Corridor) 및 동서를 횡단하는 동서수송로(East-West Corridor)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아프간정부는 국가의 숙원사업인 철도망 구축 계획도 수립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인근 국가인 터키, 인도, 중국, 파키스탄 등의 업체도 진출해 각종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시간이 지나며 여름철 고온과 겨울철 혹한의 독특한 기후 특성으로 포장이 파손되는 등 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시공한 도로에서는 파손이 발생하지 않아 발주처를 비롯한 아프간 국민들은 고품질 고속도로를 건설해 준 삼환기업, 나아가 대한민국에 감사를 표시하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3년 카불지사를 개설하고 첫 공사를 수주한 이래 9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그 중 8개의 프로젝트가 국가기간망인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이며 나머지 1개가 대한민국정부에서 발주한 바그람기지 내의 최신식 병원, 훈련센터, 숙소 및 한국식당을 신축하는 프로젝트이다.
또한 International Link Road와 Ring Road로 이루어진 6개의 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완공하고 남북수송로 건설을 위한 2개 프로젝트 완공에 주력하고 있다. 국가의 대동맥인 고속도로 건설은 인접국가와 수도 카불간의 원활한 물류 이동은 물론 지역간 인적 교류 증가로 아프간의 경제 성장과 치안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실례로 아프간 중앙에 위치한 오아시스인 바미얀지방은 아프간에서 유일하게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반디아미르 호수와 바미얀 석굴군 및 역사적 성채 등이 많이 남아 있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매우 뛰어난 지역이다. 이전에는 교통편이 불편하여 관광지 개발이 더뎠지만, 고품격 포장도로가 개설되면서 관광객이 증가하고 지역경제가 개선되자 주정부에서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아프간인들은 우리 회사가 시공한 아름다운 실크로드의 복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국가기간도로망 구축 마스터플랜]
아프가니스탄 공사현장의 사건 극복 사례
사례 1 : 장비·자재의 조달
아프간에서 공사를 수주하고 제일 처음 봉착한 문제는 공사 수행에 필요한 장비·자재를 아프간 현장으로 조달하는 것이었다. 한국 내에서 조달해 공급하는 장비부품·자재 등에 대해서는 중국을 경유하는 루트인 ‘한국 평택항→중국 칭다오항→중국 신장 우루무치→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 하이라탄’을 개발해 운반하였다. 내륙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는 항구가 없어서 방글라데시와 몽골에 보관 중이던 회사 장비와 두바이 등지에서 신규 구입한 장비를 옮기기 위해 인접 국가를 관통하여 운반하였다.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 공사용 자재의 조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장비의 운반은 파키스탄 카라치항구를 통해 반입하였고, 주요 외자재 또한 카라치항구를 경유해 페샤와르를 거쳐 운반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아프간 주둔 미군이 파키스탄 내 탈레반 반군세력들에게 공습을 하기 시작하면서 파키스탄에서 미군의 영토 침범에 항의하며 나토군 물자 보급 루트인 카이바르 국경을 폐쇄 조치하였다. 또한 파키스탄 카라치항구에서 자주 테러가 발생하고 나토군 물자 보급 컨테이너가 분실되어 카라치항구에서의 물자 하역과 통관이 중단되며 현장 외자재 조달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란의 반다르압바스항구를 이용하는 루트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 중 아프가니스탄 헤라트로 반입하는 루트는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도시인 마이마나로의 이동로가 개설되지 않아 남부 칸다하르를 경유해야만 했는데 아프간 내 이동이 장기간 소요되어 실제로는 이용이 불가능하였다. 결국 이란을 남에서 북으로 관통한 후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 우즈베키스탄을 거치는 루트를 이용해 현장의 주요 외자재(아스팔트, 비투민 등)를 반입하였다.
사례 2 : 아스팔트 및 골재 생산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아스콘과 골재가 필요하다. 국내의 경우 아스콘 생산전문업체가 전국 각지에 위치해 필요한 물량만큼 요청하면 된다. 또한 아스콘 포장전문업체에게 하도급 시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아스팔트 포장 공사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골재 생산도 일부 공사현장의 경우 공사구간에서 발생하는 암버럭을 이용해 골재를 생산하기도 하나, 골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 골재생산업체에 주문만 하면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프간에서는 일부 소규모 업체는 있지만 대규모 토목공사용 아스콘을 생산하는 공장시설이나 업체가 전혀 없고 시방에 맞게 품질을 관리할 만한 업체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아스콘 재료인 비투민(Bitumen)과 골재를 공급해주는 업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스콘 생산 공장시설과 골재 생산시설을 직접 설치해 아스콘 및 골재를 시방규정에 맞게 품질관리하며 생산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크라샤 플랜트 총 11개 설비와 아스팔트 플랜트 총 4개 설비를 운영하며 아프가니스탄 도로 공사에 필요한 골재 생산 및 아스콘을 생산하였다.
[골재 생산설비(Crusher Plant)] [아스콘 생산설비(Asphalt Plant)]
사례 3 : 샘물교회 피랍사건 발생 및 아프간 철수 명령 대응
2007년 7월 샘물교회 소속 선교 봉사단체 23명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마쟈리샤리프 봉사활동을 마치고 남부 도시 칸다하르로 이동하던 중 중부 가즈니에서 탈레반에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랍자 중 두 명이 탈레반에게 무참히 살해당하자, 정부가 나서서 아프간에 파견중인 다산·동의부대의 철군 요구 조건 수용을 약속하고 피랍 42일 만에 인질 석방에 성공하였다. 그 뒤 대한민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고 모든 거주 및 체류 중인 교민에 대해 철수 명령을 내렸다.
우리 회사는 이미 계약을 체결해 공사를 수행 중인 상황에서 전면 철수가 가져올 계약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 막대한 물적 피해와 국제공사 수주 제한, 회사 및 국가신인도 하락 등 유무형의 피해가 발생하므로 철수가 불가함을 정부 관계부처에 호소했다. 또한 자체 수립하여 운영 중인 안전 매뉴얼을 확대 보강해 치안 확보 방안인 ‘테러 및 비상사태 대응 지침’을 수립해 정부를 설득하였다.
이후 정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정부합동 안전점검반을 편성해 현지의 안전수립 대책 및 운영현황을 점검했으며, 우리 회사는 여행금지국가인 아프간 체류를 승인하는 ‘여권 사용허가 승인’을 매년 외교통상부로부터 득하고 있다. 또한 해외건설협회, 국토해양부, 국가정보원,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등과 긴밀하게 교류하며 가상상황을 설정한 시뮬레이션훈련과 모의대피훈련을 실시해 유사시 직원들의 행동대처요령 숙지 및 안전의식을 고취해 오고 있다.
사례 4 : 무장괴한 현장 습격과 근로자 납치 사건 극복
2010년에 접어들면서 탈레반의 발원지인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집중적인 공습을 감행하자 반군세력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아프간 북부지방으로 세력 분산과 확장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남부에 비해 치안이 양호한 북부지방도 불안해지면서 아프간 북부 발크주 및 사만간주의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무장괴한이 출몰하여 한국인과 외국인을 상대로 납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중순, 당사 현장의 서브캠프(Sub Camp)가 지역 무장괴한 세력들에게 기습공격을 당해 캠프를 지키던 경비들마저 도주해버리고 방글라데시 근로자 한 명이 무장반군이 쏜 총에 목숨을 잃고 방글라데시 근로자 다섯 명이 무장 반군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이후 현장은 즉각 안전매뉴얼 2단계 비상상황을 발령하고 비상연락망에 의거해 아국 정부와 유관기관에 즉시 통보하였다. 동시에 현장의 모든 인원 및 장비를 안전지대로 철수시켜 공사가 전면 중단되고 아프간 철수를 고려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