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에 추가

해외건설협회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
국토교통ODA사업지원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중소기업수주지원센터
해외건설인재정보
해외건설e정보시스템
해외건설사이버박물관
국토교통부
외교부

컨텐츠내용

Home 별관 역경스토리

역경스토리

[한진중공업] 속도경영과 현지화 전략의 성공신화, 한진重 수빅조선소 건설

등록일 : 2015/06/02

<수빅조선소 전경 (2012년 현재)>

 

조선부문의 성장동력이자 건설부문의 자부심, 필리핀 수빅조선소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조선부문의 위기 극복을 위한 중요한 성장동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이와 함께 건설부문의 기술력과 시공능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크나큰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필리핀 수빅만에 위치한 297만㎡의 광활한 부지에 축구장의 10배 규모가 넘는 초대형 도크를 비롯, 첨단 설비를 갖춘 공장 설비를 시공하는 대역사(大役事)를 불과 3년만에 단독으로 완벽 준공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당시 공사과정을 지켜보고 참여했던 회사의 일원으로서 깊은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수빅조선소가 건립된지도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돌이켜 보면 착공전처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실제 공사기간, 그리고 준공까지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한 편의 드라마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생존과 명운이 달려있는 큰 공사였기에 참여하는 임직원들의 자세도 남달랐고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준공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였다.

한진중공업의 성장 돌파구, 필리핀 수빅에서 찾다

수빅조선소 프로젝트는 부산 영도조선소의 성장한계와 부지면적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2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회사의 정책으로 시작되었다. 경영진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국내에서 조선소 확장이 가능한 터를 찾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전국 곳곳 검토해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고, 그럴수록 조선소 부지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졌다. 결국 국내에서 적합한 부지를 찾지 못하여 회사는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검토는 더욱 다각적으로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 선정된 곳은 필리핀 수빅이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약 110km 거리에 위치한 수빅(Subic)은 필리핀의 주요 섬인 루손섬에 있는 항구도시다. 여의도의 120배에 달하는 면적 내에 약 3천여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어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로서 그 활용가치를 높게 평가 받았으며, 현재에는 평온한 해변과 경제자유구역 등으로 인하여 우수한 휴양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회사가 필리핀 수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필리핀 내에 오랜 기간 쌓아온 확고한 기반과 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은 1973년에 국내 최초로 필리핀에 진출한 이후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40여년간 항만, 공항, 경전철, 교량 등 70여개에 달하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높은 명성과 탄탄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맺어진 필리핀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는 회사가 타국에서는 얻지 못했던 파격적인 조건의 혜택과 지원을 얻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오랜 세월 쌓아온 정치, 사회적인 인맥과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필리핀 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 등은 회사로 하여금 프로젝트의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였다.

이와 더불어 수빅의 장점은 해당 조선소 부지의 안벽수심이 10m 이상 되고 수빅만 입구의 섬들이 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 조선소 입지로서 최적의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영어 생활권 및 경제특구라는 각종 투자 인센티브 등으로 세계 어느 지역보다 글로벌 조선소로서 사업을 실현하는 데에 최적지라는 판단을 내렸다.

필리핀 수빅에 조선소를 건립하기로 결정한 이후, 회사는 2005 5 13일에 마닐라 말라카냥궁에서 수빅조선소 겸 철구공장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우선 착수될 1단계 공사는 초대형 선박의 건조가 가능한 길이 370m, 100m, 깊이 12.5m 5도크와 1.6km에 이르는 안벽시설,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과 공정별 크레인, 선각공장, 조립공장, 도장공장 외 사무동, 케이터링 센터 등 최적의 시설을 건립하는 것으로 계획되었다.

이와 동시에 회사는 필리핀 내에서 그 동안 축적해 온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철저한 사전준비에 착수하였다. 계열사인 한국종합기술을 통한 사전 설계, 수빅지역의 인프라에 대한 기본조사 및 정치, 사회, 문화적인 여건조사를 빠짐없이 실시하였으며, 조선소 건설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조직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창사 이래 가장 큰 해외 투자사업으로 최단기간 내 조선소를 건설함과 동시에 선박 건조작업을 시작해야만 했던 회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치의 오차도 발생시키지 않고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미 수빅조선소에서 건조할 선박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시작한 상태였기에 조선소 건설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조선부문의 공정에도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 수빅조선소 건설이었다.

 

<착공전 수빅조선소 부지의 모습 (2005)>

착공에 어려움을 겪게 했던 현지인 이주민 문제

착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조선소 부지 지역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었던 약 700여 가구의 주민 이주 문제였다. 이미 기공식을 200652일에 거행하기로 필리핀 정부와 협의한 상태였기 때문에 회사는 필요한 장비 및 인원을 투입하여 기본적인 토공수행 외에 행사장까지의 진입로 마련 및 행사장 주변 정리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3월 말이 되어도 대부분의 주민이 이주를 거부하자 회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즉각적인 대책이 시급하였다. 주민들을 찾아가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각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며 수빅에 조선소를 건립함으로써 생기는 고용 증대를 비롯한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였고, 주민들이 이주할 시 회사는 그에 따른 보상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충분한 설득을 통하여 알렸다.

식사 때가 되면 일부러 현지 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이어갔고, 밤이 되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두움으로 변하는 동네에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맥주와 음료수를 사전에 준비하여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가 이곳에 조선소를 세움으로써 지역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에 대해 주민들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했다.

밤 늦은 시간에 주민들을 설득하러 다니다가 돌아가는 배를 타지 못해 발이 묶여 숙소에 제대로 귀가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설득과 회사의 진심 어린 태도에 주민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일부 주민들이 회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주를 시작하자, 끝까지 이주를 거부하던 이들도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순식간에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기공식을 진행하기 며칠 전에 대부분의 주민들을 무리 없이 이주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지독한 필리핀의 우기

현지 주민 이주 작업의 성공으로 수빅조선소 건설공사는 계획대로 2006 5 2일에첫 삽을 뜨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드넓은 대지에서 시작한 공정은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무더위와 잦은 비 등 악천후는 공사기간 내내 커다란 역경으로 다가왔다. 24시간 철야 작업으로 터파기 작업을 해 놓으면 폭우가 내려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일쑤였고, 한 낮의 더위와 태풍 또한 위협적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매일 5천여명에 달하는 출역인원과 700여대의 신형장비가 24시간 쉴새없이 가동되는 현장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필리핀은 보통 6월부터 우기가 시작된다. 우기가 되면 약 2개월간 매일 폭우가 쏟아져내리기 때문에 트럭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고 절토작업을 하는 중장비까지 물에 침수될 정도로 지긋지긋한 장마와의 싸움이 진행되었다. 공사 시작 첫 해인 2006년 우기의 경우 2달동안 비가 오지 않은 날이 3일에 불과할 정도로 햇빛을 보지 못하여 그 어려움은 더했다. 아무리 양수기로 배수작업을 해도 물은 빠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와 태풍으로 초기 공정부터 지연되기 시작했다.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공사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이에 대한 대책으로 회사는 조기에 석산을 개발하여 그 곳에서 나오는 발파암을 활용하였다. 중장비 이용도로에 커다란 발파암을 포설한 후, 깬 자갈을 깔아 비가 와도 문제 없이 다닐 수 있는 중장비 진입도로를 마련하여 우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작업이 없는 야간에는 배수담당을 배치, 밤을 새워 고인 물을 퍼내 주간에 작업을 다시 개시할 준비를 하였고, 비 오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자 계획보다 지체되었던 초기 공정율 만회를 위해 24시간 작업체제로 일찍이 전환하여 이를 극복하였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특단의 적절한 대책을 마련, 이행함으로써 사전에 예방한 것이다.

 

<토목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수빅조선소 건설공사>

 

현지 인력 관리의 어려움

수빅조선소가 건립된 부지는 착공되기 이전에는 갈대 숲이 우거진 벌판과 제법 경사가 있는 구릉지역, 양어장 및 모래사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부지를 중장비가 통행 하여 수천, 수만톤의 중량물이 위치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부지 조성작업을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