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6/02
한진중공업은 1973년 들어 또 다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이 무렵 해외건설 경기가 중동 산유국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판단 아래 1973년 초 국내 업체로서는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1970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행에 들어가 교통?통신망 등 공공시설 건설공사가 급증하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현지의 알토키(ALTORKI)사와 합작하여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1973년10월 3일에 교통체신성이 발주하는 87km의 움라지~알와즈간 도로공사의 국제입찰에 참가하여 1,365만 3,000달러로 낙찰에 성공하였다. 특히 이 공사의 계약은 국내 건설업체들이 중동으로 눈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움라지~알와즈간 도로공사는 아라비아반도의 서쪽 홍해 암벽의 해변에 87km의 2차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공사로 준공 이후 그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도로 중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현지에 ‘한진중공업’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중동 지역에서 첫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추가 수주가 없어 철수와 재도전의 선택에 직면해 있던 중 1977년 4월 얀부 시멘트공장 부지의 진입로 공사 계약을 체결하였다. 또한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1977년 겨울, 중동에 진출한 다른 나라의 건설업체들이 하나 둘씩 철수하던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왕궁 영빈관 시설공사, 타이프 공군기지 시설공사, 카이바~타북간 도로공사 등을 잇달아 수주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중 미 육군공병단으로부터 수주한 왕궁영빈관 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공사를 통해 우수한 기술에 의한 철저한 품질 및 공정관리로 회사는 1979년 10월 15일 미 육군공병단으로부터 우수준공 표창을 받았고, 그 이전인 1월 23일에는 50만 시간 무사고 표창을 받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주되는 미 육군공병단 공사에 대한 사전 입찰자격도 획득하였다.
한편 타이프 공군기지 시설공사는 회사 설립 후 수주한 해외공사 중 최대 규모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국내 건설업체가 수주한 건축공사 중에서도 최대 규모의 공사였다. 공사 수주액 3억 2,696만 달러도 1977년 우리나라 해외공사 수주액 35억 달러의 9%에 이르는 금액이었다. 한편 회사는 타이프 공군기지 시설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6,000여만 달러 상당의 카이바~타북간 도로공사를 수의 계약하는 또 하나의 개가를 올리면서 중동 지역에서만 총 4억 6,300만 달러의 대형 공사를 수주해 1979년에는 창립 이래 최초로 매출액 1,000억 원대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2월 25일, 최대 규모의 타이프 공군기지 시설공사를 성공리에 완공함으로써 발주처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성과 감리회사, 원청사인 발 라스트 네담 그룹 등으로부터 공기 내에 양질의 공사를 완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공기 내 준공으로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하였고, 견적, 입찰, 설계, 시공, 사후관리 등 전반적인 기술력도 크게 향상시켰다.
이라크 진출
우리나라의 이라크 건설수주는 1977년 첫 진출 후 1981년에 본격화되었다. 특히 1981년에는 한진중공업을 비롯한 8개 업체가 총 19억 4,630만 달러의 수주기록을 세워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에 이어 해외건설시장 실적 3위로 부상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독일 KHD사의 하청으로 얀부 시멘트공장 토목 및 철구조물 공사를 1980년 12월 성공리에 시공하여 호평을 받은 한진중공업은 1981년 2월 KHD사로부터 이라크 사마와 시멘트공장 건설공사에 참여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새로운 시장 개척의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수익 증대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KHD사와 계약하였다. 이는 한진중공업이 이라크에서 수주한 최초의 공사로, 이 공사는 아직도 이라크 진출의 시금석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