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5/06/03
한진중공업이 해외시장 개척자로 태평양 지역 진출 무렵에는 국내 건설업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한창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조중훈 선대회장이 늘 강조했던 ‘자원이 부족한 좁은 국토에서 국내 업체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기보다는 해외에서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내 건설업체의 해외진출이 많지 않을 때여서 주로 태국, 월남, 괌 등지에서 하청공사 또는 미 극동지구공병단이 발주하는 소규모 공사를 수주하는 데 머물고 있었다. 수주 추계액도 1968년 말까지 4,700여 만 달러에 불과하였다.
개척자로서의 역할을 자청한 한진중공업은 1969년 7월 신설된 업무부 산하에 국내업무과와 해외업무과를 두고 해외건설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1년 8월 미국의 신탁통치령이던 TTPI(Trust Territory of Pacific Islands)에 진출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그 해 12월 미 해군 신설공병단이발주한 얍·포나페섬 상하수도공사를 수주하면서 해외진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 공사는 얍섬과 포나페섬에 각각 상하수도관과 물탱크, 폐수정화시설 등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1972년 2월 3일부터 시작된 포나페섬 공사는 교통과 기후, 인력 등 공사현장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1973년 11월 26일까지였던 공기가 1974년 3월 14일까지 108일간 연장되고 공사금액도 증액되었다. 얍섬 공사의 경우에도 1974년 5월 13일까지로 약정되었던 공기가 30일간 연장되면서 역시 공사금액이 증액되었다. 이같이 열악한 공사 환경에서도 현장 직원들은 개척자 정신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공사를 성공리에 마쳤다.
1972년 8월29일에는 마샬제도의 관문인 마주로섬과 이바이섬의 마주로 국제공항 및 경찰서 신축공사, 마주로 고등학교 강당 건립공사 등 공공시설물 공사를 수주하여 1975년 1월 성공적으로 준공하였다. 이와 함께 마주로섬에서 200여km 떨어진 마샬제도 잘루이트섬의 고등학교 신축공사도 수주하여 공사기간을 6개월이나 단축하면서 1976년 3월 준공하였다.
현장 임직원들은 이렇게 교통과 기후 조건이 좋지 않은 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국인의 의지와 슬기를 발휘하여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특히 1974년 한진중공업은 국내에서 단일 해외공사 수주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해외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에 대해 1976년 2월 말 잘루이트섬 고등학교 건물 인계 기념식에서 미국의 신탁통치령 최고 책임자인 에드워드 존슨은 “한진중공업은 그 어느 시공자도 이룩하지 못했던 원대하고도 성공적인 작업을 수행해 왔다. 따라서 원한다면 이 지역의 어느 공사건 우선권을 부여할 생각이다.”라고 말하며 깊은 신뢰를 나타내기도 했다.
마샬제도 공사 수주 후에도 1973년 3월 15일에 얍섬의 안테나 설치장 도로공사를 2만 5,000여 달러에 수주한 것을 비롯하여 1977년까지 얍섬 및 포나페섬의 화력발전소 시설공사, 얍섬의 인근 섬인 유리티섬의 여학교 기숙사 공사, 포나페섬 병원공사, 얍섬의 통신시설 건물 증축공사 등도 잇달아 수주하였다. 이처럼 1970년대에 태평양 지역에서 10여 건의 크고 작은 공사를 수행하면서 회사는 기술력과 근면성, 투지를 해외에 널리 알렸으며 해외건설의 경험을 쌓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