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내용
별관 역경스토리
- [대림산업] 브루나이 최초의 사장교,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 개통
- 대림산업이 건설한 브루나이 최초의 사장교인 순가이 브루나이 대교의 개통식이 2017년 10월 14일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서 거행되었다. 개통식은 브루나이 국왕의 즉위 5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과 대림산업 윤태섭 부사장 등 공사 관계자들과 현지 주민들이 참석했다.
- 2019/05/22
- 현대엔지니어링-LG상사 컨소시엄, 투르크메니스탄서 3조4천억원 규모 초대형 석유화학플랜트 성공리에 준공
- 현대엔지니어링·LG상사 컨소시엄이 또 다시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인 투르크메니스탄의 경제발전사에 큰 획을 그었다. 현대엔지니어링(대표이사 사장 성상록)·LG상사(대표이사 사장 송치호) 컨소시엄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에탄 크래커(Ethane Cracker) 및 폴리에틸렌(Polyethylene)/폴리프로필렌(Polypropylene) 생산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2018년 10월 17일 현지에서 준공식을 가졌다고 18일 밝혔다.
- 2019/05/22
- [삼부토건] 히말라야 설산도 녹인 도전정신의 개가, 필자 조남욱氏
- 우리나라 해외건설업체들이 초기에 중동땅에 나가 사막 속에서 ‘검은 노다지’를 줍고 있을 때, 우리 회사는 1972년부터 진출한 말레이시아 고속화도로를 시공하면서 그 북새통을 예의 관망하고 있었다.
- 2015/04/28
- [대림산업] 월남땅에 건설의 첫삽을 꽂고, 필자 이재준氏
- 나는 평소 모든 일에는 시기와 진리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거나 타이밍이 적절치 못하면 일을 그르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가 좁은 국내시장에서 탈피, 이국땅에 건설의 첫 삽을 꽂고「불도우저」의 굉음을 울리기 시작한 1966년이야말로 해외건설의 지평을 여는 적절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 2015/03/16
- [현대건설]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고, 필자 정주영氏
- 나는 우리 현대가 참여하고 건설한 지난날의 수많은 업적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이정표로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공사를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파타니 -나라티왓 도로공사는 우리 회사가 국제적으로 발전하고 진출하는 결정적 게기였으며, 또 국내적으로는 국가경제개발계획의 초기 단계에서 우리가 보여준 구체적이고 확실한 희망의 이정표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 2015/03/16
- [현대건설] 방글라데시 자무나 다목적 교량공사(우기의 날씨와 사투를 벌였던 현장)
- 현대건설이 방글라데시에 처음 진출한 것은 자무나 교량공사 수주 추진차 현지에 지점을 설치한 1988년 7월이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지점은 현지 정국이 어지러워지면서 공사 발주가 지연되어 일시 철수됐다가 1994년 자무나 교량 수주 상담이 재개되면서 다시 설치되었다.
- 2015/03/02
- [현대건설] 레눈 수력발전소(지옥 같은 터널 속에서)
- “아직도 비 오는 밤이면 열대 밀림 속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듯합니다. 사이드 미러가 닿을 듯 말 듯하게 스쳐가던 현장 진입도로 위 차량들의 상습적인 곡예운전, 그리고 동남아 근무자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두리안의 중독적인 향기까지도…….”
- 2015/03/02
- [현대건설] 싱가포르 썬텍시티(썬텍시티, 그 ‘거대한 손’의 탄생)
- 썬텍시티는 8층 규모의 컨벤션 센터와 18층 규모의 업무용 빌딩, 45층 규모의 오피스 타워 4개동, 그리고 이들을 잇는 병렬상가인 포디움으로 구성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대형 복합건물 단지이다.
- 2015/03/02
- [현대건설] 싱가포르 브라니 컨테이너 터미널 공사(무인도의 뱀과 싸우며)
- 깨끗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파견될 때만 해도 현대건설 직원들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브라니섬이 무인도라고는 하나 본토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는 말에 부푼 꿈을 안고 싱가포르로 향했던 것이다.
- 2015/03/02
- [현대건설] 파푸아뉴기니 용키댐 공사(영화 같은 부족들의 집단 분규)
- 현대건설은 남태평양의 남위 10도에 위치하고,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용키댐 건설공사를 수행하였다. 1986년 9월에 착공해 1991년 8월에 완공하기까지 현지근로자들과 많은 분쟁을 겪었다. 분쟁의 원인은 임금인상 요구, 토지보상 요구, 다부족·다언어의 관습 차이, 법규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이었다.
-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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